아무리 성공적인 디자인이라고 하더라도 뛰어난 모양을 뽐내는 정도이거나, 아니면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정도의 기능성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런데 어떤 디자인은 모양이나 쓰임새라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사람의 생활방식 자체를 바꾸거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럴 때 디자인은 그저 디자인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인류학적 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굿 디자인이냐 아니냐 하는 지극히 디자인적 기준이나, 한낱(?) 경제적 부가가치 같은 척도로는 이런 디자인에 담긴 가치를 포착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대단히 거시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할의 핵심에는 바로 생활방식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 생활방식은 쉽게 바뀌지도,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생활방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이미 유전자처럼 굳어진 관습이나 행위를 바꿀만한 참신하고 납득할 만한 정신적, 물질적 체계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된다. 물건이나 디자인 하나로 쉽게 바뀔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물론 세상에는 디자인 하나가 선입견과 물질적 체계를 새로 다지면서 그런 변화를 초래한 사례들도 있다. 하지만 이태리타월처럼 손바닥만한 천조각 하나가 그런 역할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보니 마치 우리가 고조선시대부터 때를 밀며 살아 온 것 같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때를 밀면서 청결한 삶을 향유하게 된 것은 이태리타월이라는 천조각이 나온 뒤부터다. 일본의 영향으로 지금과 같은 공중목욕탕이 나온 것이 10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일이니, 그 위에 때를 민다는 생활습관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이것은 단지 우리나라 안에서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목욕 문화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대단한 물건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 때문이다. 이태리타월을 처음 만든 이는 부산에서 직물공장을 하면서 타월을 생산하던 김필곤이라는 사람이다. 새로운 타월을 개발하기 위하여 지금 이태리타월에 쓰는 원단을 이태리에서 수입해 놓았으나 천이 워낙 까칠까칠하다보니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저런 실험들을 반복했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래도 비싼 외화만 낭비하고 수입한 원단을 못 쓰게 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어느 날, 밤새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목욕을 하던 중 까칠까칠한 천으로 피부를 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태리 타월 ⓒ한국디자인문화재단
그래서 원단으로 몸을 문질러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때가 시원하게 벗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천을 나누어 주고 때를 밀게 해보았더니 그 반응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바로 특허를 내고 상품으로 만들어 생산했는데, 예상대로 결과는 대박이었다. 손바닥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이 조그마한 천조각 하나는 순식간에 한국 사람들의 목욕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이후로 이태리타월로 때를 미는 행위는 젓가락질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혀야 할 기본적인 습관이 되었다. 최근에는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이태리타월로 때를 미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천조각 하나로 목욕하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니 우리 문화 안에서 이만큼 파괴력 있는 문화상품도 없을 것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신기한 타월에 하필이면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전혀 관계가 없는 나라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에 큰 의문을 가지는데, 그것은 이태리타월을 개발할 당시 사용했던 원단이 이태리에서 수입한 ‘비스코스 레이온’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한국 사람들은 이 손바닥만한 천조각이 만들어진 덕분에 너나 할 것 없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피부 표면에 붙어있는 때를 벗고 몸 전체가 상쾌해지고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작지만 큰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